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대입을 위한 수학 문제 풀이를 할 때에는 수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유형에 대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정답을 빨리 맞출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훈련(?)을 받은 셈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에게 동일하게 강요되었던(그리고 지금도 강요되는) 방식.



대학을 나와 회사 일을 하다 보면 간혹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 분야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막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돌파구를 찾는데 있어서 내가 고등학교 때 습득한 "빨리빨리"라는 습관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라. 오히려 아주 작은 문제 하나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해 보려고 노력했던 일종의 삽질(?)에 대한 경험이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회에 나가 닥치게 되는 일들은 정답이라는 것도 모범 답안이라는 것도 없다.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예전에 내가 어느 회사에 들어 갔을 때 처음으로 받은 업무가 미탐지 트래픽 분석이었다. ISP 트래픽의 40% 정도가 UDP(미탐)였었고, 이게 아마도 토렌트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을 했었다. 그때까지는 토렌트를 사용해 본 적도 없었고, 어떠한 방식으로 트래픽이 송수신되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스스로 모든 걸 익히고 파헤쳐 가야만 했다. 오랜 삽질(?) 끝에 결국 미탐 트래픽을 분석해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당시 ISP에 납품이 되어 네트워크 QoS가 보장되는 것까지 확인을 하고 나서 드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기술 방면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희열이라는 것을 맛보는 계기가 되었었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과제를 받아 보면, 뭐랄까 일종의 트릭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스스로 노력해서 코드를 작성하기 보다는 기존에 잘 되어 있는 코드를 조금 수정하여 내는 경우, 혹은 어떤 경우에는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코드를 베껴 내는 경우,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현실과 쉽게 타협(점수 & 학점만을 위해, 과제에 투자하는 시간상의 한계 등)하려는 경우...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를 고민다하가 결국 "결과만 좋으면 그 과정은 상관 없다"라는 결과 지상주의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성찰을 해 본다. 이는 어느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에서부터 시작된 기성 세대의 잘못이라고 봐야겠지.



스펙 중심의 기존의 교육 시스템과 기성 세대가 바뀌지 않는 이상 "대학이라고는 곳은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말은 거창한 이상 주의의 말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뭐 이러한 거창한 고민 말고, 하나부터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법이 통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 얻어 갈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느끼게끔 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본다.